타임머신 S99 (90대) 나의 부모님 앞에 올리는 글
아버님 전상서
민들레 허리가 굽어지고, 귀뚜라미도 숨죽이던 날! 그렇게 조용히 떠나신 아버님, 오늘은 왜 아버님이 이렇게 그리운지요? 아버님과는 그리 많은 대화는 없었지만, 나에게 아버님이란 단어는 항상 나의 마음속 깊게 파여 고여 있는 우물과 같습니다.
나의 초등시절, 매일 아침마다 어둠이 드리워진 새벽녘에 삽 한 자루를 등에 메고 시골의 논두렁으로 향하시던 아버님의 뒷모습이 기억납니다.
나의 중등 시절, 나의 늦잠으로 인해 지각할까봐 아버님 오토바이에 저를 태우고 부르릉 달려가 주시던 날도 기억납니다.
나의 청년 시절, 저의 신혼집 소형 아파트 계약을 위해 그토록 좋아하시던 자장면 한 그릇도 못 드시고 계약이 잘못될까 두려워 허기진 배를 움켜지시고 복덕방을 뛰어다니시던 날도 기억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은 가벼운 진단을 위해 간단한 내의와 양말 두 켤레를 가방에 넣으시고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수많은 검사에 이은 합병증 수술로 이어지면서 그리도 오고 싶으셨을 당신의 시골집에 돌아오지도 못한 채 작은 짐 가방 하나를 끌어안고 쓸쓸한 대학 병원에서 외롭게 떠나셨던 그 날도 기억납니다.
아무 말도 없이 일만 하시던 아버님의 그 자리와 그 깊은 뜻이 무엇이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이제서야 알았고, 자식들에게 한 치의 짐도 안주시려고 그나마 본인의 이슬눈물 마저도 자식 누구에게도 감추려 하셨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저에게 젊은 날에 기회가 많았음에도 남들 다가는 유원지 한식당에 모시고가서 그 영양가 있는 잡곡밥, 그 구수한 오리탕 한번 못 사드린거가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속상합니다.
아버님!
이번 추석에는 아버님이 사시던 시골집에 한번만 다녀가세요. 머나먼 곳에서 오시기 때문에 아버님이 저를 태워주셨던 그 오토바이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제가 모시러 나가겠습니다.
구순(九旬)이 넘으신 어머님도 벌써부터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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